솔직히 저는 태국 하면 뜨거운 햇살과 야시장만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1월에 방콕에 가보니 낮 기온이 35도를 웃돌더라고요. 밖에 5분만 있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져서, 낮에는 숙소에만 있기 아까워 카페거리를 돌아다니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우연히 찾은 곳들이 제 태국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특히 일본식 수플레를 파는 작은 카페는 지금도 생각나는 맛이었어요.
태국 물가와 스타벅스 라떼지수

방콕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던 첫날, 기사님이 미터기를 안 켜시길래 당황했습니다. "미터 플리즈"라고 말하니 그제야 미터기를 켰는데, 40분 정도 달려서 톨비와 팁 포함해 450바트(약 18,000원)를 지불했습니다. 태국 물가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금액이었죠.
다음 날 아침, 숙소 근처 화려한 건물에 자리한 스타벅스에 들렀습니다. 태국에서도 스타벅스를 왜 가냐고 물으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각 나라의 스타벅스가 다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얼그레이 티 라떼를 주문했는데 한국에서 마시던 것보다 훨씬 진한 맛이었어요. 여기서 라떼지수(Latte Index)란 스타벅스 라떼 가격으로 전 세계 물가 수준을 비교하는 경제 지표를 의미합니다(출처: 한국은행 경제용어사전).
실제로 태국 스타벅스는 현지 카페에 비해 2~3배 비쌌지만, 한국 스타벅스와 가격대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흥미로웠는데, 같은 글로벌 체인이라도 현지화 메뉴는 분명 존재하거든요. 티 라떼의 진한 풍미가 그 증거였습니다.
통로 카페거리의 태국식 양식

스타벅스를 나와 통로(Thonglor) 카페거리로 향했습니다. 통로는 방콕의 청담동이라고 불릴 만큼 세련된 동네입니다. 실제로 걸어보니 고급 레스토랑과 부티크가 즐비했고, 현지인들의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임을 체감할 수 있었어요.
'Audrey'라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인테리어는 유럽풍이었지만 메뉴판을 보니 독특했습니다. 똠얌꿍 피자와 태국식 파스타가 있더라고요. 저는 둘 다 주문했습니다. 여기서 퓨전 요리(Fusion Cuisine)란 서로 다른 문화권의 조리법과 재료를 결합한 음식을 의미합니다. 태국식 양식이 바로 그 사례죠.
똠얌꿍 피자는 예상대로 자극적이었지만 중독성 있는 맛이었습니다. 토마토소스 대신 똠얌 페이스트를 베이스로 쓴 것 같았어요. 파스타는 정말 매웠습니다. 태국 고추(프릭키누)가 들어간 게 분명했는데, 한국 청양고추보다 2배는 더 매운 느낌이었습니다. 태국 음식 전문가들에 따르면 프릭키누는 스코빌 지수(SHU) 50,000~100,000 수준으로 청양고추 4,000~8,000 보다 훨씬 높습니다(출처: 농촌진흥청). 여기서 스코빌 지수란 고추의 매운맛을 수치화한 단위입니다.
무알콜 모히또로 입가심을 하고 계산했는데, 파스타 한 그릇이 220바트(약 8,800원)였습니다. 태국 야시장 팟타이가 50~60바트인 걸 생각하면 4배 가까이 비싼 셈이죠. 제 생각에는 이 정도면 방콕에서도 가장 비싼 동네 물가라고 봅니다.
일본식 수플레의 폭신한 감동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수플레 전문점을 발견했습니다. 14분 정도 걸어갔는데 들어가자마자 분위기에 반했어요. 화이트 톤의 인테리어에 자연광이 쏟아지는 공간이었습니다.
수플레 팬케이크를 주문했습니다. 320바트(약 12,800원)로 태국 물가 대비 꽤 비쌌지만, 20분을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수플레(Soufflé)란 프랑스어로 '부풀다'라는 뜻으로, 달걀 흰자를 머랭 상태로 만들어 반죽에 섞어 구운 디저트를 의미합니다.
첫 입에 놀랐습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식감이 도쿄에서 먹었던 일본식 수플레보다 훨씬 폭신했거든요. 아마 머랭의 공기 함량이 더 높았던 것 같습니다. 제과 기술에서 수플레의 부드러움은 달걀 흰자 거품의 기포 크기와 개수로 결정되는데, 이 집은 그 균형을 완벽하게 맞췄다고 생각합니다.
1분 만에 다 먹고 또 하나 주문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큰 수플레를 하나 더먹을지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일본식 수플레 전문점이었던 것 같은데, 일본보다 태국에서 먹은 게 더 맛있었다는 게 아이러니합니다.
카페 내부에서 사진을 100장 넘게 찍었습니다. 빛이 예뻐서 핸드폰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어요. SNS용 사진을 찍으러 온 현지인들도 많았습니다.
카오산로드의 저녁 풍경
해가 지고 나서야 그랩(Grab)을 타고 카오산로드로 향했습니다. 낮에는 35도가 넘는 더위 때문에 밖에 나갈 엄두가 안 났거든요. 여기서 그랩이란 동남아시아 지역의 대표적인 차량 공유 플랫폼으로, 한국의 카카오택시와 유사한 서비스입니다.
카오산로드는 배낭여행자들의 성지답게 활기가 넘쳤습니다. 거리 양쪽으로 태국 음식, 의류, 액세서리, 헤나 샵, 마사지 가게가 빼곡했어요. 저는 바로 먹거리 골목으로 직행했습니다.
바나나 로티(Roti)를 먼저 주문했습니다. 얇은 밀가루 반죽에 바나나를 넣고 팬에 구운 뒤 누텔라와 코코넛 크림을 듬뿍 뿌려주더라고요. 한 입 베어 물자 바나나가 입안에서 녹았습니다. 이게 50바트(약 2,000원)라는 게 믿기지 않았어요.
새우 볶음밥과 계란 팟타이도 시켰습니다. 처음엔 좀 달짝지근했는데, 테이블에 놓인 양념 세트로 맛을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태국 식당에는 보통 네 가지 양념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 설탕 (단맛 조절)
- 피시소스 (짠맛 강화)
- 식초에 절인 고추 (신맛과 매운맛)
- 고춧가루 (매운맛 강화)
이 네 가지를 자기 입맛대로 섞어서 먹는 게 태국식 식사법입니다. 저는 식초에 절인 고추를 좀 더 넣어서 새콤하게 먹었어요.
밥을 먹고 옷을 구경하다가 헤나 샵에 앉았습니다. 150바트(약 6,000원)에 손등에 그림을 그려주는데, 복잡한 디자인은 추가 요금이 붙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심플한 꽃무늬를 선택했고, 1시간 뒤에 벗겨내면 된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방콕에서 먹은 모든 음식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단연 수플레입니다. 누가 태국에서 뭐가 제일 맛있었냐고 물으면 저는 망설임 없이 수플레라고 대답합니다. 카오산로드의 바나나 로티도 좋았지만, 수플레의 그 폭신한 식감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태국식 양식도 특별한 경험이었고요. 일반 피자나 파스타가 아니라 태국 향신료로 맛을 낸 퓨전 요리는 한국에서 절대 먹을 수 없는 맛이니까요. 방콕에 가신다면 야시장만 가지 마시고, 낮에는 카페거리에서 수플레를 꼭 드셔보시길 권합니다. 통로 카페거리의 태국식 파스타도 매운 음식을 좋아하신다면 도전해볼 만합니다.